Dasim의 세상사는 이야기 Dastory.

2009년 10월 5일 월요일

1m에서 떨어뜨린 달걀이 안 깨지려면

최근 20~30대 취업률이 19년 만에 최저로 내려갔다는 정부 통계가 나왔다. 삼초땡(삼십대 초반이면 인생 땡이다), 니트족(일하지도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 등 신조어가 현재의 취업난과 고용 불안 세태를 상징적으로 대변한 것도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청년층 일자리 부족 사태는 미래 인적자원 문제와도 연결되어 국가 경쟁력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부에서는 청년인턴제도 등 각종 고용대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고용의 질을 확대하기에는 역부족이다. 4년제 대학 졸업생의 정규직 취업률 역시 40% 이하로 10명 중 6명이 단기간의 비정규직으로 내몰리고 있다.

경기 침체, 노동시장의 경직성 등은 기업이 좀 더 유연하게 고용문제를 대처하지 못하는 원인이 되지만, 한편으로 정작 산업현장에서 기술 인력이 필요한데 뽑을 만한 인재가 없다는 모순된 현실이 지적되기도 한다. 이러한 세태를 마냥 사회 책임으로 돌리고, 시대를 잘못 만났다고 불평을 하며 보낼 것이 아니라 어려운 당면 과제를 자신의 입장에서 고민하고 그 해결 방안을 찾아보는 능동적 자세가 필요하다.

맹목적 스펙 쌓기보다는 자기만의 평생 기술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이력서에 한 줄 더 써 넣기 위한 학점, 어학점수, 자격증, 해외연수, 봉사활동 등 다양한 스펙 만들기는 자칫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목표의식이 없이 남들이 하는 대로 좋은 대기업, 안정적인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기 십상이다. 학생들을 상담해 보면 정확히 하고 싶은 일은 없고 눈은 높아서 힘들고 어려운 일은 하기 귀찮고, 보수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시작하기 싫고, 실패가 두려워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는 무섭고, 고생해서 자수성가하기보다는 작은 노력으로 안정적이고 좀 더 편한 직장을 바라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취업난으로 고민하는 청년들에게 한 번쯤 자신을 냉정하게 되돌아보고 자기성찰의 기회를 가져보라고 권하고 싶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한 CEO인 랜디 코미사가 미얀마를 여행하다가 한 승려를 만나서 '수수께끼' 하나를 얻는다. 지금까지 벤처 캐피털리스트로서 경영의 귀재라는 소리를 들은 그가 그 수수께끼를 풀면서 비로소 자신의 경영철학이 서게 된다. 그것은 "1m 위에서 달걀을 떨어뜨려 깨지지 않게 할 수 있는가?"이다. 수수께끼의 해답을 푼 그는 무릎을 친다. 지금까지 자신이 달려온 모든 일들이 자신의 삶과 괴리된 별개의 행동으로 허무하게 비친 것이다. 그 수수께끼의 해답은 '1m보다 더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는 것'이다. 달걀이 1m까지 낙하해서 깨지지 않으려면 1m보다 더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면 된다.

목표는 달성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그러면 '깨지는 달걀'이 된다. 목표는 종착점이 아니라 하나의 과정에 불과하다. 취업은 인생의 목표가 아니라 인생을 어떻게 꾸며 나갈 것인지의 한 과정에 불과하다. 여기저기 이력서를 보내다가 운 좋게 취업이 되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모른 채 평생을 허무하게 살아갈 것인지, 조금 더디게 가더라도 직접 몸으로 체험하고 실천하여 자신의 길을 찾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 것인지, 그 답은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다.

10월 7일부터 10일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는 '2009 미래직업박람회'가 열린다. 미래를 준비하는 젊은 꿈나무들에게 과거·현재·미래의 직업세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미래 유망직업을 직접 겪어볼 수 있는 다양한 체험장이 마련되어 있다. 얼마나 명확한 목표를 가졌느냐에 따라 경험의 값어치가 크게 달라질 것이다.

2009년 10월 4일 일요일

아프리카에 물이 부족한건 일본의 참치초밥 때문이다?


"이제 물은 주변에서 흔히 쓸수 있는 재화가 아니다. 미래에는 물이 희귀재로 떠오를 것이다"(자크 아탈리)
세계 인구 6분의 1이 물이 없어 고통탑ㄷ고, 2명 가운데 1명은 배수시설이 없는 환경에 살며 질병 위험에 노출됐다. 물이 풍족하던 시기에는 잠잠했으나 예전만큼 확보가 쉽지 않아지자 국가 사이, 지역 사이갈등까지 슬슬 고개를 들고 있다. 한예로 농업국가인 에티오피아는 강 상류에 있는 수단, 이집트와의 갈등 때문에 물을 마음ㅇ껏 쓰지 못한다. 이제 누군가 '21세기에 물전쟁이 일어나는 것 아니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수도 없을 것 같다.


에릭 오르세나. 지은이는 개발경제학자이자 대통령 연설문 작성자이며, 프랑스 국립 조경학교 학장과 해양센터 원장을 지낸 프랑세즈 아카데미 회원이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職(직)을 뛰어 넘어, 스스로의 業(업)을 '작가'로 정의한다. 그가 말하는 작가란 '자신이 품은 의문에 대해 책으로 답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이번에는 '물'에 대한 질문에 답하기로 했다. 수십 권의 참고 문헌을 읽는 지루한 작업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짐을 쌌다. 그 길로 오스트리아, 싱가포르, 인도, 방글라데시, 중국, 이스라엘을 비롯한 아프리카 국가들을 여행했다. 그곳에서 물과의 전쟁에서 싸우는 물리학자, 행정가, 곤충학자, 농부, 댐 건축가, 의사, 기후난민을 만났다.

우주 속의 우주로 비유되는 '물'의 복잡다단함을 단번에 섭렵하고자한 여행은 아니었다. 물 부족은 세계적이지만 그 영향은 언제나 지역적이다. 따라서 어느 곳에나 들어맞는 기술적인 해결책이 있을 수 없음을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캐나다 사람들이 물을 덜 쓴다고 해서 알제리 사람들의 물 고통을 더는 것은 아니며, 기후 변화로 일어나는 방글라데시의 홍수로 오스트레일리아의 가뭄을 해갈하기는 어렵지 않은가 말이다.

'물'이라는 망망대해를 책 속에 완전히 담아내기는 어렵다. 그는 마음 깊숙한 곳에 실패하겠다는 의지까지 품은 다음에야 발을 내딛었다. 정답은 없겠지만 답해야 할 물음이 있었다. "전 지구적 진보란 결국 지역적인 진보를 더한 값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기후 온난화는 오히려 지역에 따른 강우량 격차를 심화시킬 것이다. 인구 폭발이 맞물리면 생존을 두고 국지적인 갈등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과 똑같은 나일강 유량으로 어떻게 2025년의 에티오피아, 수단, 이집트의 인구를 먹여 살릴 것인가? 90억에 달할 세계 인구를 먹여 살릴 미래의 농업이 필요로 하는 물은 어디에서 구할 수 있을까? 물의 위기는 식량위기로 땅 전쟁으로 모습을 바꾸며 이미 우리를 위협한다. 필요한 것은 지역적 진보를 종합하고, 이를 공유하며 물 소비에 대한 상세한 지식을 늘려 행동을 바꾸는 일이다. 그는 그것을 작가의 業(업)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나는 이 부분에 감동했다)

먼저, 이 여행을 따라 가는데 도움이 되는 몇 가지 전제를 정리해보자. 첫째로 물은 생명의 원천이자 기본권의 대상이므로 물 사용의 문제는 탈정치적일 수 없다. 물은 희소재이므로 물을 나눠쓰는 것을 익히는 것은 함께 사는 방법을 익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둘째로 모든 물은 장소와 연결되어 있다. 지구상에서 물은 매우 불균등하게 분포되어는데 특성상 무거우면서 상하기 쉽기 때문에 세계 물 시장 같은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물은 기본적으로 지역적인 재화이므로 이로 이한 갈등과 해결책도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

셋쩨, 그러나 물 부족의 위협은 세계적이므로 공동의 노력이 중요하다. 게다가 이른바 '나비효과'라 부를 만한 일들이 여기서도 일어난다. 초현대식 일본 어선들이 저인망을 쳐서 물고기를 잡자 아프리카 모리타이 인근 해역에서 고기를 잡던 영세한 어부들은 경쟁력을 잃고 바다를 떠나야했다. 이 지역의 사람들은 생선 대신 염소나 소 같은 가축으로 단백질을 섭취하기 시작했다. 쇠고기 1kg을 생산하는 데는 13,500리터의 물이 필요하다. 우리가 먹는 생선초밥이 아프리카의 물을 고갈시킨다는 얘기다. 달리 말하면, 물 부족으로 인한 국지전의 세계적 버젼은 식량위기와 땅 위기이다. 어떻게 90억에 가까울 인구를 먹여 살릴 농업을 발전시킬 것인가? 이다. 세계적 물 위기는 아마 일어나지 않을 것이지만, 식량 전쟁과 땅 전쟁은 이미 진행중이다. 교육의 강화, 농업의 방향전환, 버추얼 워터의 개념을 살린 세계무역, 물 의회와 재판소 등은 유효한 공동의 노력이 될 수 있다.

지은이의 여행은 가뭄의 현장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시작된다. 오스트레이일라에서 농업은 여전히 총 수출의 15퍼센트를 상회한다. 밀, 옥수수, 포도밭, 목축은 이 나라를 상징하는 풍경이다. 그런데 가뭄이 풍요의 풍경을 바꾸어 놓았다. 최근에는 '농부들의 자살을 막기 위한 순회 버스'까지 생겼다. 인도의 농부는 척박해지는 토양 때문에 생계를 잇지 못해 자살을 택하지만, 오스트레일리아의 농부는 3~4대에 걸쳐 이뤄온 농장의 문을 자신의 손으로 닫아야 하는 절망감에서 자살을 택한다. 4일마다 한 명 꼴이다. 급기야 정부에서는 사회복지사와 심리학자들을 태운 버스를 동원했다. 농부에게 당신 혼자만이 아니라 지구 전체가 기후 온난화로 신음하고 있으며, 가뭄의 책임자가 온전히 당신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리고 위로하기 위함이다.

한편 물 소비에 관대했던 이 나라의 행정 역시 바뀌기 시작했다.'물에 관한 법Water Act'을 만든 것이다. 이 법에 따르면 농부들은 저마다 경작하는 농지 면적에 비례하는 양의 물을 공급받는다. 필요량이 공급량을 초과하면 농부는 물 시장에서 물을 사야한다. 이때 지불해야 하는 가격은 당연히 수요와 공급을 반영한 시장 가격이다. 반대의 경우, 즉 물을 남기는 경우에 농부는 물을 시장에 내다 팔 수 있다.

물을 '물 쓰듯이' 쓰는 시대는 끝났다. 물에 적당한 가격이 매겨지면 타이나 말레이사처럼 강수량이 많은 지역이 벼농사에 비교 우위를 점하게 될 것이다. 유럽연합이 농부들에게 지원금을 줄때, 자유경쟁의 기치를 높이 들면서 비판하는 나라가 오스트레일리아이다. 하지만 이들은 가장 본질적인 사실을 잊고 있었다. "물값을 얼마나 내고 있는지 말해주면, 당신이 은밀하게 받고 있는 지원금이 얼마나 되는지 알려줄 수 있지, 라는..."(p73).

여행은 바닷물에서 염분을 제거하는 담수화에 열을 올리는 싱가포르와 이스라엘을 거쳐, 국가 주도의 거대한 치수 사업으로 물길이 없는 오지에 인구 수 백만의 도시를 세운 중국을 둘러본 다음, 방글라데시로 이어진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6백여 개에 이르는 이 나라의 섬은 기대수명이 아주 짧아졌다. 북부 지역의 경우 기껏해야 2~3년밖에 되지 않는다. 본토도 평온하진 않은데, 이 나라의 물줄기인 갠지스강과 브라마푸트라 강을 인도와 중국이 차지했기 때문이다. 인도가 방글라데시 국경 옆에 댐을 만들어 갠지스를 막자 이 나라의 강 바닥은 모래로 덮이기 시작했다. 중국은 브라마푸트라 강에 댐을 건설할 계획이다. 이 댐이 들어서면 방글라데시의 유용 가능한 토지는 절반으로 줄어든다. 홍수에 열대저기압, 모래로 덮은 강과 염분 증가, 비소의 위협... 이 나라의 농민은 땅을 버리고 도시로 몰려간다. 이 나라의 수도 다카는 허름한 판잣집으로 뒤덮인다. 앞으로 10년, 20년 후에 이렇게 사는 '기후 난민'은 몇 백만 병이나 될까? (p156)

리비아 ·튀니지 ·알제리 등 아프리카 북서부 일대를 아우르는 마그레브 지역의 사정은 어떨까. IPCC(기후 변화에 따른 정부 간 전문가 그룹)의 보고서에 따르면 의 강수량이 25퍼센트까지 감소할 것이며, 이로 인해 물 부족이 보편화되고 농업 생산성이 50퍼센트까지 저하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카딸루냐 지방도 마찬가지다. 물 부족을 겪는 인구 5백만의 도시 바로셀로나에는 물을 실은 배들이 잇달아 입항한다. 염분 제거 공장이 있는 마르세유 등지에서 오는 배들이다. 이렇게 물을 얻는 데는 물 1세제곱미터당 10유로 이상이 든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에티오피아에서 발원하는 청나일 강은 수단의 백나일강과 합류하여, 나일강 전체 유유량의 80퍼센트 정도를 차지한다. 그런데 농업국가 에티오피아는 그 물의 1퍼센트도 못 되는 물만을 사용한다. 계곡에 위치한 수단과 이집트가 힘을 가하기 때문이다. 현재 인구 7천 5백만 명인 에티오피아의 인구는 2025년에 이르면 1억 2천만 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청나일 강에서 물을 끌어 오지 않으면 어떻게 이 많은 사람들에게 물을 공급하고 식량을 생산할 것인가? 에티오피아가 미국의 동아프리카 정책에서 전략적 위치를 차지하는 지역임을 감안하면, 물 전쟁의 위협은 더욱 커진다.

한편 세계 곳곳에서 물 부족을 극복하기 위한 실험들이 진행되고 있다. 물 부족은 지역적 문제, 다시 말하면 다른 해결책을 요구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각 지역의 사정에 맞는 해결책을 찾는 게 중요하다. 일군의 학자들은 혹독한 나미비아 사막에서도 살아남는 동식물 군, 특히 풍뎅이에 주목했다. 풍뎅이의 딱딱한 등껍질은 툭 튀어나온 혹과 움픅 들어간 홈이 번갈아 나타나는 조직이다. 혹은 물은 좋아하고, 홈은 물을 싫어한다. 안개가 걷히면 풍뎅이는 바람이 부는 쪽을 향해 버티고 서는데 그러면 수증기가 혹 위로 밀집해 물방울이 맺히고, 물방울은 홈을 통해서 입까지 굴러떨어진다. MIT 소속의 학자들이 이 기제를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어떤 표면이 수증기를 가장 잘 받아들이는지를 알아낸 것이다. 일단 풍뎅이의 등껍딜을 재현하자, 크기를 키워 사막에 물을 주는 공장을 만드는 일은 순식간에 진행되었다. (p312)

더 고무적인 실험은 '공기 중에 포함된 물을 뽑아 쓰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대기 중에는 1만 2천 9백 세제곱킬로미터에 해당하는 담수가 포함되어 있는데. 98퍼센트가 수증가 상태이며 나머지 2퍼센트는 구름 형태로 존재한다. 이는 우리가 살고 있는 대지 속에 포함되어 있으며, 재생 가능한 액체 상태의 물(1만 2천 5백 세제곱킬로미커)와 거의 맞먹는 양이다.

프랑스의 한 대학에서 수증기를 응축하는 온도를 계산하는 실험을 거듭한 끝에, 단순하게 생긴 패널을 바닥이나 지붕에 박아 물을 얻는 방법을 고안했다. 이 도구로 매일 밤 1제곱이며터의 패널에서 1리터의 물을 얻을 수 있다. "인도에 사야라트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쿠치 근처 구자라트 주에 속한 마을이죠. 그곳에선 1년 중에 한 달, 길어야 두 달동안만 비가 옵니다. 우리는 학교의 지붕(350제곱미터)을 단열제로 덮은 다음, 그 뒤에 특수 제작한 플라스틱 막을 한 겹 입혔습니다. 매일 아침이면 그날그날 날씨에 따라 15리터에서 110리터의 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정도면 마을 사람들의 생활을 확 바꿀 수 있습니다. 제 말을 믿으세요!" (p316)

칠레에서는 페수 처리에 지렁이를 이용하는 방법을 연구중이다. "인간을 포함하여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동물의 무게의 총량에서 지렁이들의 무게가 80퍼센트 이상을 차지한다. 또 25제곱미터 정도의 면적에 지렁이 2만5천 마리가 살고 있으며, 1년이면 이 지렁이들이 50킬로미터 정도의 땅꿀을 판다. 지렁이들은 몸의 한 쪽으로 흙을 삼키고 반대쪽으로 불순물이 제거된 순수한 흙는 뱉는다."(p 387) 이 연구팀은 '콩바이요'라는 마을에서 지렁이를 이용한 페수, 여과 장치를 실험중이다.

농업 부분의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어디날 할 것 없이 물 부족으로 경작할 땅은 줄고, 토양은 척박해지고 있다. 물로 인한 진짜 전쟁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기아로 인한 폭동은 잦아지고 있다. 프랑스 남서부 지방에서 '농부란 누구인가'란 질문을 던진다면 '물을 찾는 사람이다'는 답을 들은 가능성이 크다. 농부들은 지하수 층을 관리하며, 팜스타 체제를 갖추고 위성을 뛰워 농작물의 상태에 따라 필요한 물의 양을 세밀하게 계산하기 시작했다. 물이 증발하기 쉬운 뜨거운 낮에 옥수수 밭에 물을 흠뻑 뿌려대던 것은 이제 부끄러운 일이 됐다.

지은이는 세계 곳곳을 넘나드는 여행의 끝을 비교적 차분하게 정리한다. 이 여행에서 물로 인한 갈등과 위협을 확인했고, 지역적 단위에서 모색하고 있는 해결책도 엿보았다. 그 다음에는 무엇이 더 필요할까? 이야기는 물의 가진 공공재로서의 성격, 정치성에 대한 논의로 되돌아온다.

1990년대 말 볼리비아 코차밤바에서 일어난 '물의 전쟁'이 대표적 사례다. 국제통화기금은 돈을 빌려주며 구조조정을 요구했다. 여기에는 물론 공기업의 민영화가 포함됐고, 일련의 과정을 거쳐 코차밤바 지역 수자원 관리 공사는 미국의 베흘텔 사가 주동이 된 국제 컨소시엄에 업무를 이양했다. 컨소시엄은 대대적 투자가 필요함을 이유로 들어 물값을 올렸다. 새로 배달된 고지서에는 수입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액수가 적혀있었다. 시위가 시작됐고, 2000년 4월 정부가 항복했으며 수도가 다시 공영화되었다. 여기까지는 '물 투쟁의 역사'에 씌어진 내용이다. 그 다음은 어땠을까? 코차밤바의 물값은 여전히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물부족 현상은 줄어들지 않았다. 수도꼭지에서는 아주 가끔씩만 물이 나온다. 그 때문에 생수업자들의 수입은 현저하게 늘었다. 지은이에 따르면 물의 민영화나 공영화 어느 한쪽을 택하는 것은 완전한 답이 아니다.

요컨대 물에 관한한 기적적인 해결책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물을 나눠 쓰는 수밖에는 없다. 에스파냐에서는 오래전부터 '물 재판소'에서 나눠 쓰기 원칙을 준수하도록 소송인을 교육한다. 네덜란드와 핀란드에서는 '물 서클'이 같은 역할을 하며, 프랑스는 190명의 의원으로 구성된 물 의회를 운영한다. 환경론자부터 건설업자, 농부, 주민까지 모여 서로 다른 이해를 조정하는 과정을 거친다.

물의 미래를 찾아 떠난 여행은 절박한 이야기를 뒤로 하고, 새로울 것 없어 보이는 호소들로 끝을 맺는다. 물은 생명의 원천이라는 실질적이고 상징적인 이중의 중요성 때문에 언제나 정치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물이 무료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연대의식을 키우자 등등. 그러나 450여 쪽에 이르는 책을 마무리하는 문장은 추상적이지도 담담하지도 않다. 위협은 구체적이니까.

"비록 천성적으로 낙천적인 기질을 타고난 여행객이지만,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나는 내부에서 한 가지 불안이 자꾸만 고개를 쳐드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다. 오염, 과잉 생산, 토양 부식, 과도한 도시화, 도처에서 경작할 수 있는 땅은 줄어들고, 토양은 지쳐간다. 우리는 어디에서, 무슨 땅에서 90억 인류를 먹여 살릴 농업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인가? 세계적인 물의 위기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땅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p432)

물 부족의 문제는 단지 목마름의 문제가 아니란 얘기다. 목말라 죽거나 혹은 굶어 죽거나. 물 부족으로 인한 갈등과 고통은 버젼을 달리하며 세계 곳곳에서 전개될 것이다.

책의 내용은 여기까지다. 위의 문장의 다음에는 어떤 문장이 이어져야 할까. 김영사는 이 책에 '물을 장악하는 리더가 세계를 움직이는 21세기 워터소사이어티!' '21세기의 물은 권력이다, 물을 장악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라는 광고 카피를 붙였다. 그런 이야기가 이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책이 전하려는 이야기는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다. 물을 장악하려는 싸움은 백전백패가 될 것이다('4대강 살리기'가 떠오르는 걸 피할 수 없다) 물을 장악하려는 의도 대신 물부족이란 공통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리더십, 절박함을 갖는다면 승산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리더십은 헌신에서 온다. 이 책도 그 헌신의 결과다.